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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Pick  |  도시를 움직이는 건 나일까, 도시가 나를 움직이는 걸까… 국제갤러리 김세은 개인전 <핏월과 픽토>

Editor's Pick | 도시를 움직이는 건 나일까, 도시가 나를 움직이는 걸까… 국제갤러리 김세은 개인전 <핏월과 픽토>

입력: 2026.09.28(월)



2026. 8. 24 – 10. 18

핏월과 픽토
Pictos and Pitwall

김세은Seeun Kim

국제갤러리 K2

자주 다니던 길이 어느 날 사라진다. 새로운 도로가 생기고 익숙했던 진입로는 막힌다. 내비게이션은 금세 새로운 경로를 알려주지만, 몸은 한동안 이전에 오가던 길을 기억한다. 도시는 어제 접했던 장면 위에 오늘 마주한 풍경을 겹쳐 놓는다. 그렇게 도시가 바뀌는 동안, 그 속에 있는 ‘나’는 어디에 서 있고 또 어떻게 움직이는가.
김세은의 회화에서도 도시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눈에 담아온 전형적인 도시 풍경을 화면 위로 여러 층 쌓아 올리면, 그 사이로 빈 곳이 남는다. 작가는 이 틈을 공간에 생긴 균열 혹은 자기 ‘숨구멍’이라 말한다. 화면 속 도시 역시 그렇게 호흡하고 변하는 하나의 유기체가 된다.

국제갤러리는 8월 24일부터 10월 18일까지 K2에서 김세은 개인전 <핏월과 픽토Pictos and Pitwall>를 개최한다. 김세은(1989)은 개인의 정신과 육체가 적응하는 속도와 무관하게 끊임없이 갱신되는 도시 시스템과 규칙에 주목한다. 그리고 도시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하며 몸으로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을 ‘그림 그리는 몸’으로 회화에 담는다.
전시 제목부터 도시를 받아들이는 두 가지 방식을 품고 있다. ‘핏월pit wall’은 모터스포츠, 특히 F1에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경기 상황을 살피고 정보를 모아 다음 판단을 내리는 공간이다. ‘픽토picto’는 복잡한 정보를 간단하고 분명한 이미지로 바꾸어 전달하는 픽토그램pictogram에서 가져왔다. 계속 들어오는 정보를 읽고 판단하는 일과, 그렇게 파악한 것을 이미지로 바꾸는 일. 김세은은 두 개념을 따라 K2 2층에서 1층, 외부 중정으로 전시를 이어간다.

국제갤러리 K2 2층 전시실 전경. photo by 안천호 /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김세은Seeun Kim. ‘옥수’, 2026. photo by 안천호 /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2층에서는 먼저 변화하는 도시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분석한다. 지도와 실시간 도로 교통 영상, 사진처럼 서로 다른 경로로 들어온 정보를 나란히 놓고, 하나의 관제 시스템처럼 도시를 조망하고 연결한다. 그러나 화면과 카메라가 전하는 정보만으로 현재의 도시를 읽는 것은 아니다. 김세은은 간접적으로 수집한 정보에 자신이 지나온 장소와 기억을 겹치며 지금 마주한 풍경을 다시 해석한다. 전시장 정면을 채우는 ‘옥수’(2026)는 지인에게 받은 옥수역 사진에서 시작됐다. 사진 속 흙빛 환풍구와 그 옆 녹지대를 본 작가는 어린 시절 마주했던 분당 아파트 단지 공원의 자투리땅을 떠올렸다. 1989년 분당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태어나 성장한 김세은은 효율을 앞세운 도시 개발과 그 과정에서 밀려난 이름 없는 공간들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현재의 옥수역으로부터 지난날 분당에서 본 장면이 되살아나듯, 지금 마주하는 장소에는 몸에 쌓인 시간과 경험이 함께 들어온다. ‘틀과 눈’(2026)은 작가가 집에서 작업실까지 오가는 경로를 실시간 도로 교통 카메라가 포착한 장면들로 구성했다. 매일 자기 눈높이에서 지나던 길을 도시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로 다시 보며, 평소 닿기 어려웠던 도시 구조까지 시야를 넓힌다.

국제갤러리 K2 1층 전시실 창가에 걸터앉은 김세은 작가 옆으로 <터널화> 연작 세 점과 ‘포트 더 브리지’(2026)가 차례로 걸려 있다.

김세은에게 변화하는 도시에서 자기 위치를 감각하는 일은 결국 몸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도시를 경험하는 몸은 그대로 ‘그림 그리는 몸’이 된다. 작가는 자기 키에서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도록 2m 안팎의 대형 캔버스를 사용하고, 때로는 손목만, 때로는 팔과 어깨까지, 또 때로는 몸 전체를 사용하는 식으로 신체에 조건을 건다. 같은 동작을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하며 익숙해지면, 캔버스 크기나 조건을 다시 바꿔 낯선 상태를 만든다. 계속 바뀌는 도시 시스템과 규칙에 적응하고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캔버스에서도 되풀이되는 셈이다.

이러한 ‘위치 감각’은 지도 위에 찍힌 하나의 좌표만을 뜻하지 않는다. 작가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 도버 해협을 건너기 위해 차량을 실어 나르는 유로 셔틀을 이용했던 경험에서 이를 설명한다. 열차 안에서는 자기 차량이 직접 움직이는 듯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자동차와 사람 모두 거대한 운송 시스템 안에서 함께 이동한다. 몸은 차 안에 실려 있는데 내가 놓인 장소는 계속 달라진다. 나는 움직이는 것일까, 움직여지는 것일까. 현재를 감각하는 일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움직임만 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몸과 주변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일이기도 하다.

1층으로 내려가면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에 몸의 경험이 더해진다. 2층에서 지도와 카메라, 사진으로 도시의 정보를 읽었다면, 이곳에서는 작가가 직접 경험한 풍경이 화면에 펼쳐진다. 김세은은 입체적인 공간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옮기지 않는다. 풍경을 반복해서 마주하며 달라지는 ‘위치 감각’과 몸이 원·근경을 인지하는 방식을 평면 위에 다시 구성한다.
‘포트 더 브리지’(2026)는 공항 너머 다리와 그 아래 기존 도로가 철거되고 새로운 길이 생겨나는 장면을 포착한다.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인 동시에 연결과 단절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이어져 있던 길이 사라지고 또 다른 길이 만들어지는 동안 도시의 구조물 역시 계속 세워지고 허물어진다. 김세은은 그 변화 속에서 몸으로 받아들인 공간을 한 장면으로 풀어낸다.
<터널화> 연작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더욱 선명해진다. 터널 안에 들어서면 사실상 앞으로 나아가는 한 방향만 주어진다. 김세은은 그 내부를 그림 세 개로 나누고, 실제 모습을 재현하기보다 몸이 인지한 원·근경을 다각적으로 구성한다. 폐쇄된 터널에서 경험한 공간은 회화에서 여러 거리와 방향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터널화> 연작 세 점과 함께 창밖으로 알루미늄 벽화 ‘터널화-타면 나타나는 굴’(2026)이 보이는 K2 1층 전시장 전경. photo by 안천호 /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렇게 신체로 직접 겪은 공간을 다시 구성한 회화는 관람객이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작품과 거리를 달리하면 같은 화면에서도 서로 다른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에서는 색과 형태가 먼저 보이지만, 몇 걸음 물러서면 따로 보이던 장면들이 연결되며 도시의 구조와 깊이가 살아난다. 작가가 몸으로 경험한 공간을 회화 안에서 다시 구성했다면, 관람객은 자기 위치를 바꾸며 그 화면에서 공간을 새롭게 인식한다.

전시는 외부 중정(맨 위 사진)에서 다시 한번 달라진다. 실내에서 평면으로 펼쳐졌던 <터널화> 연작은 알루미늄 벽화로 이루어진 ‘터널화-타면 나타나는 굴’(2026)로 연결된다. 이제 작품은 벽과 바닥, 빛과 공기가 있는 야외 환경에 놓이고, 관람객은 실내에서 마주했던 이미지를 따라 실제 터널 같은 공간을 거닌다.
두 벽화 사이에는 관람객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있다. 한 자리에서 작품 전체를 바라보기보다 벽화를 따라 걷고, 그 사이를 오가며 몸의 위치를 계속 바꿀 수 있다. 김세은 역시 이곳에서는 가능한 한 몸을 많이 움직이며 작품을 감상하기를 권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형태가 새롭고, 작품과 작품 사이, 작품과 주변 공간의 관계도 다르다. 평면의 벽화는 관람객의 움직임과 함께 입체적인 공간 경험으로 바뀐다. 작가가 ‘그림 그리는 몸’으로 공간을 다시 구성했다면, 중정에서는 관람객의 몸이 직접 그 공간을 읽어간다.

그렇게 보면 ‘핏월’은 모터스포츠에서 가져온 이름에만 머물지 않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고 주변 환경이 달라지는 도시에서,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다음 움직임을 판단하는 자리로 의미가 넓어진다. 김세은은 도시의 변화를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몸이 어떻게 적응하고, 다시 낯선 조건을 만나며 자기 위치를 찾아가는지를 회화와 공간으로 이어간다.

도시는 몸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제 다니던 길이 사라지고 새로운 길이 생기듯, 익숙해진 풍경과 규칙도 계속 바뀐다. 그렇다면 변화하는 도시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지금의 위치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김세은의 <핏월과 픽토Pictos and Pitwall>는 그 답을 정해주는 대신, 직접 걷고 바라보고 몸을 움직이며 자신이 있는 곳을 돌아보게 한다.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보고 있는가.


국제갤러리 서울
Kukje Gallery Seoul

서울 종로구 삼청로 54
관람: 월요일(Mon) - 토요일(Sat), 10:00 – 18:00
일요일(Sun), 공휴일(National holidays), 10:00 - 17:00
문의: +82. 2. 735. 8449


Words and photographs by Dongeun Alice Lee
Still. Courtesy of Kukje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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