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크리스틴 선, ‘TIME100 Art’·2026 맥아더 펠로우 잇따라 선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갤러리현대서 전시
입력: 2026.10.12(월)
9월, 김 크리스틴 선Christine Sun Kim의 이름이 국제 미술계에서 잇따라 호명됐다. 미국 시사주간지 <TIME>이 새롭게 발표한 ‘TIME100 Art’의 ‘Innovators’에 선정된 데 이어, 2026년 맥아더 펠로우십MacArthur Fellowship의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두 소식이 이어진 가운데, 서울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과 갤러리현대에서 작가의 서로 다른 작업 세계를 만날 수 있다.
‘TIME100 Art’는 <TIME>이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을 조명하기 위해 새롭게 선보인 리스트로, ‘Leaders’, ‘Titans’, ‘Icons’, ‘Innovators’ 네 부문으로 구성된다. 김 크리스틴 선을 ‘Innovators’에 소개한 케이트 브라운Kate Brown은 “사회가 소리와 맺는 관계, 그리고 농인 됨의 현실을 가시화하며 동시대의 주요한 작가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이어 “작가는 유머와 예리한 감각을 바탕으로 음악 기보법, 인포그래픽, 미국 수어ASL를 통해 듣기 · 언어 · 접근성에 대한 통념을 해체한다”고 설명했다.
김 크리스틴 선이 ‘TIME100 Art’에 이어 이름을 올린 맥아더 펠로우십은 탁월한 창의성과 주요 성취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을 선정한다. 수상자에게는 5년에 걸쳐 조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80만 달러가 지원된다. 존 D.와 캐서린 T. 맥아더 재단John D. and Catherine T. MacArthur Foundation은 김 크리스틴 선을 “소리, 구어, 소통의 정치적·문화적·다감각적 차원을 탐구하는 작가”로 소개했다.
이번 두 선정 이전부터 국제적인 활동을 이어온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은 현재 서울에서 열리는 두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한 전시가 언어와 소통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와 권력 구조를 향한다면, 다른 전시는 마음과 가족,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처럼 사적인 영역으로 들어간다.
움직이는 언어, 권력 구조를 드러내다
MMCA×LG OLED 시리즈 2026: 김 크리스틴 선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
거대한 화면을 가로지르던 선들이 벽과 바닥으로 뻗어 나가며 움직이는 언어로 바뀐다. 속도와 방향을 가진 선들은 서로 부딪치고 밀어내며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서울박스에서 11월 29일까지 열리는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은 드로잉과 애니메이션, 벽화, 사운드, 텍스트로 전시장 전체를 채우며 서로 다른 언어와 감각이 만나고 소통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김 크리스틴 선 개인전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 전시장 전경 / Courtesy of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MMCA)
작가는 고전 만화에서 속도와 방향, 충돌과 긴장 같은 움직임을 선으로 나타내는 ‘모션 라인’과 미국 수어의 움직임을 자기만의 시각 언어로 재구성한다. 만화와 수어에서 발견한 움직임은 평면 드로잉을 벗어나 세로 8.1m의 곡면 OLED 화면과 벽, 바닥으로 이어진다. 관람객 역시 서울박스 벽면과 바닥을 타고 뻗는 드로잉의 움직임을 시선과 몸으로 따라가며 언어를 경험한다.
전시 제목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에는 오늘날 되풀이되는 갈등과 소모적인 논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담겨 있다. 디지털 환경과 온라인 매체에서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같은 대화와 충돌을 반복하는 상황을 작가는 ‘돌과 끝없이 논쟁하는 듯한 감각’에 빗댄다. 여기서 ‘바위’는 자기 뜻을 고수하는 타인인 동시에 확신에 갇혀 타협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가리킨다. 하지만 질문은 개인 사이의 갈등에 머물지 않는다. 누가 말할 수 있고 누가 듣는 위치에 놓이는지, 어떤 목소리는 전달되고 어떤 목소리는 배제되는지 살피며 언어와 소통을 둘러싼 권력 구조까지 파고든다. 서울박스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언어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소통의 규칙을 되짚게 한다.
마음, 어떤 형태를 띤 ‘공간’인가
김 크리스틴 선 <달 마음>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김 크리스틴 선 개인전 <달 마음> 전시장 전경 /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김 크리스틴 선Christine Sun Kim. ‘Piano Therapy’, 2026 /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미술관에서 멀지 않은 갤러리현대에서는 작가의 시선이 마음과 기억, 가족과 자신의 뿌리로 향한다. 10월 18일까지 열리는 <달 마음Moon Mind>은 김 크리스틴 선이 국내 갤러리에서 처음 선보이는 전시이자 갤러리현대와 함께하는 첫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 작품은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셰이프드 캔버스shaped canvas 페인팅이다. 일반적인 사각형 틀에서 벗어나 캔버스 자체의 형태를 변형한 작업으로, 작가는 마음을 하나의 공간이자 물성을 가진 대상으로 바라본다. 캔버스 위에는 검은색처럼 보이는 짙은 푸른색과 녹색의 물감이 소용돌이치는 붓질을 따라 여러 겹 쌓인다. 작가에게 반복되는 붓질은 생각과 집착이 함께 쌓이는 과정이자 자신의 내면과 감각을 드러내는 새로운 시각 언어가 된다.
김 크리스틴 선이 오랫동안 작품에 활용해온 악상 기호는 아치형 구조와 함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강약을 달리하며 일렁이고 되돌아오는 마음을 표현한다. 음악에서 여리게 연주하라는 p(piano)는 과거를 뜻하는 past와 연결되며 자신의 뿌리와 가족, 집을 가리킨다. 반대로 세게 연주하라는 f(forte)는 미래를 뜻하는 future와 만나 에너지와 활동, 속도뿐 아니라 아직 알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불안까지 담아낸다. 화면에 반복된 p를 마주하게 된다면 작가의 과거가 지닌 무게감과 깊이가 얼마나 더해졌을지 짐작할 듯하다. 이렇듯 소리의 강약을 지시하던 기호는 작가가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마주할 시간을 읽어내는 또 다른 언어가 된다.
전시 제목 <달 마음>에도 언어와 가족, 시간에 관한 여러 의미가 겹쳐 있다. 미국 수어ASL에서 ‘마음mind’과 ‘달moon’은 모두 관자놀이를 두드리는 움직임과 연결된다. 영어에서 달은 ‘once in a blue moon’이나 ‘many moons ago’처럼 시간의 흐름과 오래전 기억을 나타내는 표현에도 등장한다. 동시에 ‘달Dal’은 작가 딸의 이름으로, 딸아이가 항상 마음속에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제목 안에서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만나고, 딸과 함께하는 현재는 지나온 시간과 이어진다. 마음이라는 공간에 개인의 감정을 넘어 가족과 기억, 시간이 포개진다.
김 크리스틴 선Christine Sun Kim. ‘Moon Mind’, 2026 /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그렇다면 마음은 작품 안에서 어떤 형태를 가질까. 셰이프드 캔버스 페인팅은 위아래로 배치된 두 개의 캔버스가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딥티크Diptych 형식으로 제작됐다. 두 캔버스 사이의 간격은 작품을 설치할 때마다 달라질 수 있으며,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관계와 심리적 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화면에 그려진 이미지뿐 아니라 캔버스 사이의 빈 공간까지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마음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는 공간으로 드러난다.
Words by Grace
Main Still. Photographs by Koeun Lee
Still. Courtesy of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MMCA)
Still.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Hyund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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