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한 조각’을 건네어 온전히 마주하도록 이끄는 예술가 제임스 터렐 개인전 <The Return>, 서울 페이스 갤러리에서 9월27일까지 열려
입력: 2025.06.12(목)
수정입력: 2025.06.18(수)
2025. 6. 14 - 9. 27
James Turrell: The Return
제임스 터렐
페이스갤러리 서울
지난 11일 서울 페이스 갤러리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빛은 사물이다.” 예술 운동 ‘빛과 공간Light and Space’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예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이 한국 개인전을 개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운을 뗐다. 그는 빛을 음악에 비유하며 “레코드판이나 음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소리를 가지듯이 당신은 이곳을 지나치는 빛을 소유하게 된다. 인간은 빛에 감응하는 존재이며, 나는 빛 한 조각을 전달하여 그 자체를 경험하고 빛 뒤에 감춰진 무엇인가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이끄는 예술가이다. 많은 이가 빛을 온전히 마주하고 소중히 여기기를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빛을 묘사하는 수많은 작가가 있던 1967년, 빛을 다루는 예술가의 길을 걷기로 한 제임스 터렐. 그는 그 자리에서 빛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여실히 드러내었다.
제임스 터렐 개인전 <The Return>이 6월14일부터 9월27일까지 서울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전관에 걸쳐 펼쳐진다. 설치 작품 5점은 각 층에 나누어져 있고, 작가는 관람자가 오랜 시간 빛을 경험하고 사유할 수 있도록 의자를 함께 배치하였다. 특히 3층 전시장에 맞추어 특별히 제작된 장소 특정적 작업 ‘웨지워크Wedgework’는 신작으로, 10명까지만 입장하여 관람할 수 있다. 빛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한 판화와 홀로그램, 평면 작업은 2층 전시장 입구와 가까운 벽에 걸렸고, 1층 전시장에서는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로든 크레이터Roden Crater’의 구축 과정을 담은 사진 · 판화 · 조각을 전시한다.
2008년 이후 서울에서 17년 만에 열리는 제임스 터렐 개인전은 페이스갤러리가 설립 6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프로젝트 중 하나로 기획하였다. 페이스 설립자 아니 글림셔Arne Glimcher는 60여 년 전 제임스 터렐과 처음 만났고, 2002년부터 그와 함께해왔다. 갤러리는 설립 초기부터 추상 표현주의와 ‘빛과 공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며 미국 전역을 아우르며 자리매김하였기 때문에, 이번 서울 개인전이 글림셔와 터렐, 그리고 페이스갤러리 간의 오랜 인연을 기념하는 깊은 의미를 지닌 자리이기도 하다. 194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제임스 터렐은 빛과 공간의 관계 속에서 감각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여 물질로서 다루는 ‘지각 예술perceptual art’에 주력해 왔다. 전통 회화가 품은 순수한 감정이라는 관념에 깊은 영향을 받은 그의 초기 작업은 ‘빛을 구성하는 것’과 ‘빛으로 그리는 행위’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된 견해를 탐구하여 색채 · 공간 · 지각 경험 방식을 실험한 결과물이었다. 이후 1960년대에 들어서 발표한 시리즈 <프로젝션 피스Projection Pieces>를 시작으로, 그는 빛과 지각을 주제로 한 다양한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1974년부터 이어진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s> 시리즈와 1976년부터 작업한 <간츠펠트Ganzfelds>가 그 대표적 예다. 터렐은 단순히 대상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스스로 ‘보고 있다는 상태를 인식하는 경험seeing yourself seeing’을 주요하게 다루는 몰입형 설치 작품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몰입형 설치 작품을 만나게 되는데, 특히 새로운 장소특정적 설치 작업 <웨지워크Wedgework>가 처음으로 공개되어 눈길을 끈다. 어두운 공간에 교차 투사되는 평면형 빛은 마치 실체를 지닌 듯한 감각을 자아내며, 경계를 지나 공간이 확장되는 듯이 깊이 빠져들게 한다.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After Effect’, 2022 LED lights Site specific dimensions Runtime: 79 minutes © James Turrell / Courtesy Pace Gallery Photo by Kyle Knodell
이외에도 터렐의 <글라스워크Glassworks> 시리즈에 해당하는 대형 곡면 설치 작품 2점과 동그라미 · 마름모 형태의 유리 설치 작품이 있다. 터렐은 오랜 시간에 걸쳐 판화와 종이 작업을 꾸준히 제작해왔는데, 이번 신작 <웨지워크Wedgework>의 판화 시리즈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또한 2014년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선보인 설치 작업 <아텐 레인Aten Reign>에서 빛이 지닌 특성을 시각적으로 포착한 아쿠아틴트와 목판화도 공개된다.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대형 프로젝트 <로든 크레이터Roden Crater> 전경 사진. Photo by Klaus Brasch © James Turrell / Courtesy of Skystone Foundation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로든 크레이터Roden Crater>의 건축 모형 ‘North Space Dark Chamber’(2006)과 부지 계획이 담긴 평면 작품 ‘2013 Site Plan Blueprint’(2013) 등이 전시된 1층 전시장 전경
마지막으로 터렐이 1977년부터 북부 애리조나 오색사막 지역에 있는 화산 분화구에서 진행하는 장기 프로젝트 <로든 크레이터Roden Crater>의 건축 모형과 평면 작업 역시 눈여겨보아야 한다. 터렐은 “천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담아내는 빛 속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로든 크레이터’는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이다. 지질학적 시간이라는 무대가 펼쳐진 이곳에서 '천체의 음악'이 연주된다.”라고 설명한다. 터렐이 평생 해온 연구의 정점을 보여주는 ‘로든 크레이터’는 특수 설계된 천체관측소로, 빛을 경험하고 사색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환경이다. 칠흑 같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외딴 사막에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직접 여행을 떠나야 하는 예술 프로젝트는 그의 빛을 향한 애정과 열정 그리고 낭만까지 깃들어 있다.
페이스 갤러리
Pace Gallery
1960년 아니 글림셔Arne Glimcher가 설립한 페이스 갤러리는 뉴욕 첼시 25번가에 본사와 전시 공간이 있고, 로스앤젤레스, 런던, 제네바, 베를린, 홍콩, 서울, 도쿄까지 전 세계 9곳에서 전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페이스는 설립 초기부터 추상 표현주의와 빛과 공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면서 미국 전역을 아우르는 독보적인 갤러리로 자리매김하였다. 현재 마크 글림셔Marc Glimcher 회장이 이끄는 페이스는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예술가들과 더불어 알렉산더 칼더, 장 뒤뷔페, 바바라 헵워스, 아그네스 마틴, 루이스 네벨슨, 마크 로스코 유족 및 재단과 관계를 이어오며 이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목소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67
관람: 화요일(Tue) - 토요일(Sun), 10:00 – 18:00
(일요일, 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관람료: 무료 (예약 필수)
문의: 02. 790. 9388
Words & photographs by Koeun Lee
Still. Courtesy of Pace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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