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를 초자연 서사로 엮어내는 헤르난 바스
입력: 2025.05.27(화)
서울 리만머핀에서 <필요와 불필요 사이의 공간>을 오는 5월31일까지 선보이는 예술가 헤르난 바스Hernan Bas는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구상 작가 중 한 명이다. 1978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나 여전히 그곳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는 2021년 국내 스페이스K에서 개인전을 가진 이후 4년 만에 다시 회화 신작 12점을 공개하며 한국을 찾았다. 현대적이면서 화려한 감각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바스는 초기 작업부터 이번 신작까지 작품마다 등장하는 젊은 남성과 사물, 풍경에 사회 문화적 맥락을 선명하게 드러내어 관람자들이 스스로 질문하며 깊이 통찰하도록 이끌어왔다. 19세기 고전 문학을 비롯하여 종교와 신화 그리고 초자연적인 요소들로부터 영감받은 그는 미국 서브컬처subculture와 엮어내어 현대적 관점의 역사화를 제시한다. 하위문화 혹은 ‘문화 속 문화’라고 일컫는 서브컬처는 정통 사회 안에서 일반적인 행동 양식과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대항하는 이들이 독자적으로 집단을 형성하여 그들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이다. 작가는 상류계층, 화이트칼라, 도시민, 히피 등 다양한 집단 문화 중에서 청소년문화를 주로 다룬다. 이는 그가 19세기 프랑스에서 시작한 문예사조 ‘데카당스Décadence’로부터 영향받은 데에서 기인한다. 지금 자기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회의감이 들고 욕망이나 집착 같은 감정이 지나치게 끓어오르며 인위적인 자극에 눈을 뜨면서 호기심이 생기는 현상을 여러 주제와 시대를 오가며 탐구한 바스는 심오한 서사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한 화면에 서구적인 분위기와 동양적 정취를 함께 담아내어 특히 국내 관람객들은 그의 작업세계가 친근하게 여겨질 듯하다.
2025. 4. 10 - 5. 31
The space between needful & needless
헤르난 바스Hernan Bas
리만머핀 서울
헤르난 바스 개인전 <필요와 불필요 사이의 공간>이 열린 서울 한남동 리만머핀 서울의 전시장 전경 / Courtesy of Lehmann Maupin
이번 전시 <필요와 불필요 사이의 공간>에서 공개된 신작들은 작가가 플로리다를 여행하면서 얻은 영감과 관심사를 바탕으로 작업하였다. 2023년 마이애미 바스 미술관에서 개인전 <개념주의자>를 위한 작업을 마친 후, 그는 일상에서 발견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 부조리함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건과 물건 그리고 행동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기존 작업에서 그랬듯이, 이번에는 19세기 아일랜드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와 프랑스 소설가 조리스-카를 위스망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하찮은 무엇인가에 집중하여 첫 번째로 상의를 벗고 모기장 모자를 쓴 청년이 늪을 헤매는 ‘불필요한 순간’(2025)을 완성하였다. 초자연적인 ‘오컬트Occult’를 다룬 회화도 만나게 된다. 맨 위 사진에서 작가가 소개하는 작품 ‘홀리데이 스피릿’(2025)은 검은 옷을 입은 소년이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앉아 반쯤 열린 ‘위지보드Ouija Board’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다. 일반적으로 죽은 자와 소통하는 도구로 알려진 이 보드는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가 상징하는 탄생의 기쁨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사실 위지보드가 실제로 영혼과 소통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데도 19세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제품이 생산되고 있는 현상 또한 작가가 던지는 ‘쓸모없는 것’에 대한 질문과 궤를 함께한다. 국내에서도 유행하는 ‘분신사바’를 떠올리면 바스가 의문을 가진 점들을 국내 관람객들도 공감할 수 있겠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목을 똑같이 지은 ‘위대한 유산’(2025)은 고기잡이배가 만선이 되어 돌아가는 꿈을 안은 채 입질을 기다리는 소년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인물을 둘러싼 사물은 낚시꾼들이 대부분 잡은 물고기를 인증한 뒤에 생명을 대하는 방식이 어떤지 생각하게 한다.
이외에도 ‘요요 세계 챔피언십’에 나와 열정을 불태우는 청년들 모습을 그린 ‘라운드 원, 요요 세계 대회’(2025)와 헤밍웨이의 집에 있는 희귀한 고양이를 돌보는 일이 유일하게 맡은 임무인 관리인을 그린 ‘육발 고양이의 관리인 (헤밍웨이 하우스)’(2025) 그리고 암탉 한 마리가 검은 알을 계속 낳자 이를 조사하는 인물을 묘사한 ‘반려동물 전문 점쟁이의 딜레마’(2025) 등이 있다. 헤르난 바스는 기이한 사건과 환경에서 마주하게 되는 필요와 불필요의 미묘한 경계를 관람자들이 끝없이 오가며 특정한 전통이나 사물에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를 되돌아보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Words & photographs by Grace
Still. Courtesy of Lehmann Mau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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