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깊어지고 도시로 넓어진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입력: 2026.09.12(토)
2026. 9. 5 - 11. 15
제16회 광주비엔날레
The 16th Gwangju Biennale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You Must Change Your Life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너를 바라보지 않는 곳이란 한 군데도 없으니까.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 중, 김재혁 번역 -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제주 화산암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오고, 사운드는 비엔날레 전시가 운영되는 496시간 내내 흐른다. 매일 반복되는 몸의 움직임은 건축과 주변 풍경에 따라 달라지며, 광주와 전남 시민들이 건넨 금속 물건은 새로운 소리를 내는 악기로 바뀐다. 빠르게 일어나는 변화와 오랜 시간 쌓이는 변화, 개인에서 공동체와 도시로 번지는 변화가 전시 안에서 서로 다른 리듬을 만든다. 9월 5일 개막한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You Must Change Your Life>는 그렇게 변하는 여러 순간을 동시대 미술 언어로 바라본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앞 대형 스크린을 통해 권병준과 박찬경의 GB커미션 ‘불림’(2026) 개막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다. photo by Dongeun Alice Lee
전시 제목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시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Archaic Torso of Apollo>(1908) 마지막 구절에서 가져왔다. 시 속 화자는 부서진 고대 조각상을 마주한 뒤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자신과 세계를 바라본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는 명령은 단호하지만, 이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비어 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바로 그 빈자리에서 출발해 물질과 신체, 지각과 관계가 새롭게 얽히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 과정에는 삶을 여는 가능성뿐 아니라 개인을 억누르는 통제와 강요도 함께 놓인다. 예술가들은 재료를 다루고 살아가는 방식을 달리하며 외부의 압력에 맞서는 또 다른 선택지를 모색한다. 이러한 반복과 훈련, 지속과 실험은 삶을 다시 조직하는 예술적 실천이 된다.
호추니엔Ho Tzu Nyen 예술감독과 박가희, 브라이언 쿠안 우드Brian Kuan Wood 그리고 최경화 큐레이터가 함께 꾸린 본전시에는 22개국 43인(팀)이 참여해 작품 300여 점을 선보인다. 지금까지 열린 광주비엔날레 가운데 참여 작가 수는 가장 적지만, 한 작가에게 내어준 공간은 그 안에 오랜 시간 쌓인 세계를 찬찬히 들여다보기에 충분하다. 여러 해, 때로는 수십 년에 걸쳐 완성한 작업들이 나란히 놓이면서 관람객은 작품 한 점에 머무르지 않고 그 뒤에 쌓인 삶과 예술의 궤적까지 따라가게 된다. 각 작품이 저마다 하나의 세계를 품은 ‘점’이라면, 그 점들이 모여 한 작가의 시간을 그리는 ‘선’이 되는 셈이다. 많은 이름을 빠르게 지나치기보다 한 작가가 일군 세계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전시다.
전시는 저마다 다른 빛과 공기, 걷는 속도를 지닌 다섯 전시실로 펼쳐진다. 작품들은 한 가지 이야기를 차례로 설명하기보다 서로 마주치며 울림과 긴장, 뜻밖의 만남을 만든다. 그 여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움직임을 좇는 제1전시실 ‘분자와 나’에서 시작한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에서 ‘분자와 나’를 다룬 제1전시실 전경, photo by Jeon Byung Cheol, © Gwangju Biennale Foundation / Courtesy of Gwangju Biennale
1전시실에서 한 관람객이 로셀라 비스코티Rossella Biscotti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전시실에 네 곳에 걸쳐 하나의 순환을 이루는 작품 네 점으로 구성된 연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다. photo by Dongeun Alice Lee
입구에서 마주하는 제주 화산탄은 뜨거운 용암이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중력과 회전, 차가운 공기를 만나 지금의 모습을 얻은 돌이다. 니나 카넬Nina Canell의 ‘상동곡(40 Kg)’(2009–2026)은 물과 공기, 소리와 중력이 시멘트와 맞물려 눈으로 헤아리기 힘든 흐름을 만든다. 왕 지아하오Wang Jiahao의 회화는 후기 사회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불안과 삶의 무게를 담는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골딘+세네비Goldin+Senneby의 ‘송진 연못’(2026)이 바닥을 가로막는다. 송진 약 2톤을 펼쳐 만든 반짝이는 표면은 시선을 끌어당기면서도 관람객의 걸음을 돌려세운다. 나무의 상처를 감싸는 송진은 한편으로 산업 재료를 얻기 위해 뽑혀 나간다. 그 곁에는 진 바스Jean Barth의 ‘응집된 영혼’(2024) 연작 속 사람 형상들이 쓰러지거나 몸을 웅크린 채 있다. 3D 프린팅용 수지로 빚은 몸에는 디지털 화면 안에서 깨지고 녹았다가 다시 모인 흔적이 남았다. 그 연못을 피해 걷다 보면 관람객은 살아 있는 듯 꼼짝하지 않는 몸과 마주하게 된다. 서로 다른 수지로 만든 두 작업 사이를 지나는 동안 보호와 상처, 회복과 무너짐은 서로 맞닿아 보인다.
제2전시실 ‘신체와 관계’에서는 바닥 한가운데를 가르는 선을 사이에 두고 작품들이 서로 마주 본다. 축구장이나 탁구대처럼 양쪽이 맞서는 모습이지만, 그 사이에서는 경쟁보다 몸과 몸이 가까워지고 멀어지며 맺는 관계가 드러난다. 시에 테칭Tehching Hsieh은 1978년부터 1986년까지 한 시간마다 타임카드를 찍거나, 건물 안에 들어가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 줄로 묶인 채 지내는 등 스스로 세운 규칙을 각각 1년 동안 지킨 다섯 작업을 선보인다. 코스기 다이스케Daisuke Kosugi의 ‘거짓된 무게’(2019)는 병으로 움직임과 말이 흐트러지는 아버지의 삶을 바탕으로 몸의 한계 안에서 피어나는 또 다른 움직임을 바라본다. 아만다 헹Amanda Heng의 ‘또 다른 여성, 광주’(1996, 2014, 2023, 2026)는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과 여러 해에 걸쳐 거듭한 몸짓을 통해 멀어졌던 두 사람이 돌봄과 기억으로 다시 가까워지는 시간을 담는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 중 제3전시실 <풍경과 배움> 전경, photo by Jeon Byung Cheol, © Gwangju Biennale Foundation / Courtesy of Gwangju Biennale
제3전시실에서 로셀라 비스코티Rossella Biscotti의 ‘문제의 두상들’(2009-2015)을 바라보는 관람객 모습
다음 전시실 ‘풍경과 배움’은 숲처럼 열린다. 사람이 땅을 가꾸고 그 땅에서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자리다. 임동식의 작업은 자연미술가 우평남(종선)의 삶과 만나고, 그 곁에는 허백련이 1947년 여러 사람과 함께 세운 광주농업고등기술학교와 무등산에서 가꾼 춘설차의 이야기가 놓인다. 관람객은 회화와 다기를 살펴보고 차를 음미하며 예술과 농사, 자연과 배움을 함께 품었던 삶을 마주한다. 크리스티안 니얌페타Christian Nyampeta는 광주시민미술학교에서 실마리를 얻어 전시장 안에 도서관을 마련했다. 관람객은 이곳에서 함께 책을 읽고 워크숍에 참여하며 서로의 지식과 생각을 나눈다.
제5전시실 <공기와 발화> 전경, photo by Jeon Byung Cheol, © Gwangju Biennale Foundation / Courtesy of Gwangju Biennale
전시의 여정은 ‘우주와 변화’에서 환영을 지나 어둠 속 밤의 풍경으로 접어든다. 제4전시실(페이지 상단 사진)에서는 순간적인 분출과 냉각, 수천 년에 걸친 풍화의 시간을 품은 제주 화산암이 다시 등장하고, 꿈처럼 보이는 이미지와 지질학적 존재들이 행성의 시간과 신화를 연결한다. 여러 전시실을 거쳐 이곳에서 다시 만나는 사사키 켄Sasaki Ken의 회화에는 먹구름이 드리운 불길한 하늘이 담겼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로 방사성 낙진이 대기 중에 퍼지고 있다는 공포가 일본 사회를 뒤덮던 때의 도쿄 하늘이다. 일상에서 늘 보던 하늘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알게 된 순간 더는 이전과 같은 풍경일 수 없다. 재난은 한순간에 닥쳤지만 그 공포는 일상의 공기 속에 오래 머문다. 이 불길한 하늘은 보이지 않는 위험을 머금은 공기를 떠올리게 하며 마지막 전시실 ‘공기와 발화’로 시선을 이끈다. 그곳에 이르면 관람객은 숨결과 소리, 말이 흐르는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재클린 키요미 고크Jacqueline Kiyomi Gork의 ‘어긋난 BPM(R로즈 변주곡)’(2026)은 공기주머니와 송풍기, 피드백 시스템과 테크노 사운드로 모습을 달리하며 관람객의 호흡과 몸까지 작품의 리듬으로 끌어들인다. 그 사이를 걷는 동안 몸은 숨을 쉬는 동시에 작품을 연주하는 악기가 된다.
다섯 전시실을 벗어나도 작품은 멈추지 않는다. 김선익의 GB커미션 신작 ‘공장의 불빛’(2026)은 비엔날레가 문을 여는 총 496시간에 맞춰 재생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들을 수 없는 만큼 관람객은 전시장을 찾은 날과 시각에 따라 서로 다른 대목을 만나게 된다. 안젤라 고Angela Goh의 퍼포먼스 ‘크래프트’(2026)는 제2전시실과 제3전시실을 잇는 바깥 통로에서 하루 네 차례 관람객과 만나고, 무용수들의 작은 움직임은 건축과 주변 풍경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해가 지면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인과 권력자가 내놓은 공식 사과를 모은 제임스 T. 홍James T. Hong의 영상 ‘사과’(2012–)가 전시관 바깥벽에 펼쳐진다. 스즈키 아키오Suzuki Akio의 ‘“o to da te”, 광주비엔날레’(2026)는 건물 둘레에 귀 기울일 자리를 표시해 바람과 발걸음, 도시의 소리를 새로운 작품처럼 듣게 한다.
광주가 지나온 시간과 시민들의 삶은 전시 안에서 또 하나의 줄기를 이룬다. 오월어머니집은 2022년부터 작가 주홍과 함께 그림 수업에 참여한 어머니들이 완성한 회화 322점과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선보인다. 5·18민주화운동으로 삶이 송두리째 달라진 여성들의 기억은 그림을 통해 여럿이 함께 나눌 역사로 남는다. 권병준과 박찬경은 공동체가 쇠붙이를 모아 의례에 쓸 도구를 만들었던 ‘쇠걸립’을 오늘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광주와 전남 시민들이 내어준 그릇과 장신구 같은 금속 물건을 GB커미션 ‘불림’(2026)의 악기와 소리 장치로 제작했다. 한 사람의 기억이 그림이 되고 손때 묻은 물건이 소리가 되어 사람들 곁으로 돌아오는 동안, 예술은 기억하고 돌보는 일이 된다.
본전시가 전시장 안으로 깊어지는 동안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은 도시 곳곳으로 시선을 넓힌다. 세계 여러 나라와 문화예술기관이 마련한 파빌리온은 광주의 문화공간과 역사의 현장에서 저마다 다른 질문을 꺼내 보인다. 본전시와 따로 꾸려졌지만 변화와 실천을 각자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분자에서 시작해 신체와 관계, 풍경과 배움, 우주와 공기를 지나온 관람객은 이제 전시관을 나와 광주의 거리와 건축, 역사와 일상 사이를 거닌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예술이 한순간에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돌 하나에 쌓인 시간, 매일 되풀이하는 몸의 움직임, 함께 배우고 기억하는 일, 손때 묻은 물건을 여럿이 나누는 소리로 돌려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삶을 움직이는 힘은 어쩌면 큰 결심보다 오래 바라보고 듣고 몸으로 옮기는 작은 행동에서 먼저 생겨나는지도 모른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는 11월 15일까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광주 일대에서 열린다.
Words by Koeun Lee
Additional photographs and video by Dongeun Alice Lee
Still. Courtesy of Gwangju Bienn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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