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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서 시작된 질문, 서울에서 다시 태어난 가우디로부터 답을 찾다

바르셀로나에서 시작된 질문, 서울에서 다시 태어난 가우디로부터 답을 찾다

입력: 2026.09.11(금)

2026. 8. 1 - 10. 31

서거 100주기 기념 특별전

가우디: 서울에서 다시 태어나다
Gaudí: Back to the Origins

신사하우스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Park Güell에서는 언덕의 굴곡을 따라 길과 기둥이 놓이고, 타일로 뒤덮인 긴 벤치가 풍경과 함께 굽이친다. 그라시아 거리에서는 카사 바트요Casa Batlló의 일렁이는 파사드와 카사 밀라Casa Milà의 거대한 석재 곡면이 도시의 반듯한 건물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ília 안으로 들어서면 높이 뻗은 기둥이 나뭇가지처럼 갈라지고, 그 사이로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번진다. 서로 다른 시간에, 서로 다른 목적으로 지어진 공간인데도 그 안에는 이상할 만큼 닮은 감각이 흐른다. 직선보다 곡선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건축과 자연의 경계는 흐려지며, 그 시선은 벽과 기둥에서 창과 손잡이 같은 작은 부분까지 닿는다. 바르셀로나 곳곳에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1852–1926)가 남긴 건축 앞에 서면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이처럼 낯선 공간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사진 왼쪽부터 후미코 카지(Fumiko Kaji) 네이키드 프로듀서, 이치로 에토(Ichiro Eto) 네이키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렉스 카날스 그라우(Alex Canals Grau) 가우디재단 디렉터, 조윤지 가우디 서울 전시 총괄, 김경훈 jpa. CCO / Courtesy of Gaudí Foundation and Gaudí Seoul

건축가 승효상이 리모델링한 서울 신사하우스에서 열리고 있는 <가우디: 서울에서 다시 태어나다Gaudí: Back to the Origins>는 그 질문의 답을 완성된 건축에서 찾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을 거꾸로 돌려, 한 건축가의 생각이 시작된 곳으로 향한다. ‘원점으로 회귀’하는 여정의 첫 공간에서는 가우디의 죽음을 마주한다. 그곳을 지나면 어린 시절 그를 둘러싼 숲과 빛, 급격하게 변하던 19세기 말 바르셀로나, 실과 추를 매달아 중력에 답을 구하던 공방이 차례로 나타난다. 그 뒤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를 거쳐 마지막에는 가우디가 지녔던 생각을 미래로 건넨다. “독창성이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우디가 남긴 이 말처럼, 전시에서 만나는 ‘원점’은 과거의 어느 한 시점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과 조화에서 창조의 시작을 발견했던 그의 시선에 가깝다.

올해 가우디 서거 100주기를 맞아 마련된 전시는 가우디 재단과 일본의 크리에이티브 컴퍼니 네이키드NAKED가 함께 제작한 공식 월드투어다.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관람객 33만 명 이상을 만난 뒤 서울로 이어진 전시는 가우디의 친필 노트와 건축 도면, 원본 타일 모델을 비롯한 재단 소장 원본 약 30점과 재단의 감수와 승인을 받은 공인 레플리카(복제품) 42점에 건축 모형, 미디어아트와 인터랙티브 체험을 더했다. 서울에서는 월드투어의 구성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정림건축의 jpa.가 신사하우스의 건축 구조에 맞춰 관람 동선과 공간 경험을 새롭게 설계했다. 관람객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전시를 완성하는 ‘리본 스페이스Reborn Space’, 가우디의 철학과 예술 세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까예 가우디Calle Gaudí’, 협업 전기 모터바이크를 선보이는 루프탑 테라스도 서울 전시에서만 만날 수 있다. 배우 류승룡의 오디오 도슨트와 뇌과학자 장동선의 ‘Art&Brain Salon’ 역시 국내 관람객을 위해 마련됐다. 오리지널 전시의 흐름 위에 신사하우스라는 건축과 서울에서 새롭게 더해진 이야기가 겹쳐진다.


자연을 관찰하고, 모형으로 답을 찾다

‘기억의 숲’에 들어서면 가우디의 건축보다 그가 어린 시절 마주한 자연이 먼저 나타난다. 나뭇가지의 뻗음과 곤충의 날개, 식물의 나선, 빛과 그림자의 변화가 그의 기억과 겹쳐지고, 그 곁에는 아버지가 평평한 금속을 두드려 입체적인 형태로 만들던 작업의 흔적도 놓인다. 전시장에 소개된 1878년경의 잎과 식물 스케치, 해바라기와 잎사귀를 담은 타일을 살펴보면 자연이 훗날 그의 건축에 등장하는 장식의 소재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나무가 가지를 뻗으며 무게를 나누고, 빛이 잎 사이를 통과하는 방식처럼 가우디가 오래 바라본 것은 자연의 모양보다 그 안에 이미 존재하는 구조와 질서에 가까웠다.

‘창조의 용광로, 바르셀로나’ 전시 공간 전경 / Courtesy of Gaudí Foundation and Gaudí Seoul

자연을 오래 관찰해온 가우디는 19세기 말 바르셀로나에서 또 다른 세계를 만난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산업화와 도시 확장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1888년 만국박람회를 전후로 새로운 예술과 기술이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 카탈루냐의 문화적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움직임과 유럽의 새로운 예술이 교차하면서 성장한 카탈루냐 모더니즘Modernisme 역시 이 변화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전시는 이 시절 바르셀로나를 ‘창조의 용광로’라 부른다. 가우디도 고딕과 로마네스크를 비롯한 과거의 건축과 전통 공예,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넘나들며 자신의 건축 언어를 찾아갔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에서 발견해온 구조와 질서에 도시에서 받아들인 수많은 자극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가우디의 공방에서는 현수선을 디지털과 설치물로 체험해볼 수 있다.

‘가우디의 공방’에서는 화려한 건축 이미지 대신 실과 추, 로프와 모형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우디는 중력 · 장력 · 균형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건축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형을 통해 살펴봤다. 천장에서 늘어뜨린 실에 추를 달면 중력에 따라 자연스러운 곡선이 그려진다. 콜로니아 구엘Colònia Güell 성당을 설계할 때 사용한 폴리푸니쿨러 모형도 이러한 실험에서 출발했다. 여러 갈래의 실과 추에 하중을 적용해 구조의 형태를 살피고, 그 모습을 거꾸로 보면 건물을 지탱하는 아치와 기둥의 배치가 드러난다. 가우디는 미리 곡선을 정해두는 대신, 실제로 작용하는 힘을 따라 건축의 답을 구했다.

서울 전시장에서는 앞서 살펴본 원리를 손으로 체험해볼 수 있다. 디지털 화면 위의 점을 연결하면 중력에 따라 선이 아래로 늘어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모형을 직접 움직이며 직선이 하나의 곡면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게 된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 평평했던 형태가 서서히 휘어지며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이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가우디의 건축에서 자유롭게 굽이치던 곡선도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일 듯하다. 가우디의 실험은 100여 년의 시간을 건너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다. 인공지능과 연산 설계를 다루는 스튜디오 팀 푸Studio Tim Fu는 현수선과 자연에서 발견한 구조를 다시 탐색한다. 모형으로 형태를 연구했던 가우디의 방식은 디지털 환경으로 옮겨왔지만, 자연과 구조에서 아직 보이지 않는 형태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질문은 여전히 계속된다.


자연에서 발견한 원리가 공간이 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레플리카 뒤로, 초기 구상을 기록한 원본 설계 도면 13점이 벽면에 걸려 있다.

가우디 건축의 곡선과 색채를 빛과 영상으로 풀어낸 미디어아트 공간 / Courtesy of Gaudí Foundation and Gaudí Seoul

실과 추로 시험했던 구조의 원리는 거대한 건축물의 뼈대로 이어진다. 그 정점에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있다. 1883년 주임 건축가가 된 가우디가 생애 후반을 바친 이 성당에서는 기둥이 나무처럼 높이 뻗어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고, 그 위로 천장이 거대한 캐노피처럼 펼쳐진다. 왜 이 공간은 숲처럼 보일까. 가지가 갈라지며 무게를 나누는 자연의 원리가 기둥과 천장의 구조가 되고, 그 안에서 어느새 숲을 닮은 풍경이 나타난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동쪽의 차가운 빛과 서쪽의 따뜻한 빛은 시간에 따라 기둥과 벽을 물들이며 하루의 흐름을 공간 안으로 끌어들인다. 서울 전시장에 설치된 대형 미디어아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품어온 ‘미완의 시간’을 현재로 불러낸다. 가우디의 구상에서 시작해 한 세기가 넘도록 조금씩 모습을 갖춰온 과정을 영상과 빛에 담았다. 벽면을 가득 채운 영상과 음향, 프로젝션 사이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의 형태와 색채, 빛과 구조가 겹치고 변화하며 가우디의 공간을 눈앞에 그려낸다.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흐른 2026년, 여전히 진행형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장 높은 중앙탑인 ‘예수 그리스도의 탑’ 외관을 완성했다. 건축 현장에서는 전통적인 장인정신에 디지털 모델링과 컴퓨터 기반 설계, 3D 제작 기술을 더해 가우디가 남긴 원리를 구현하고 있다. 도구는 달라졌지만, 자연의 법칙에서 구조를 발견하고 이를 건축으로 옮기려 했던 그의 생각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계속된다.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전시장 전경

전시장에 놓인 가우디의 가구 디자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시선을 옮기면 가우디의 생각은 훨씬 작은 곳까지 닿는다. ‘생명의 형태’를 보여주는 전시장에서는 깨진 세라믹 조각을 이어 붙이는 트렌카디스trencadís를 비롯해 카사 바트요Casa Batlló와 카사 밀라Casa Milà의 문손잡이, 난간, 가구 등을 만나게 된다. 화려한 파사드로 먼저 기억되는 두 건물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이 손으로 잡고 몸을 기대는 부분들마저 세심하게 다뤘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장식과 기능을 따로 나누지 않았던 그의 태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서로 다른 시간에, 서로 다른 목적으로 지어진 공간에서 닮은 감각이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시는 마지막으로 가우디가 남긴 공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미래를 바라본다. 관람객의 참여로 빛의 씨앗이 퍼져 나가는 디지털 아트 프로젝트 ‘단델리온Dandelion’은 화면 위로 번지는 작은 빛을 통해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고, 다시 새로운 창조로 이어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가우디가 완성하지 못한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여러 세대의 손을 거쳐 계속 모습을 갖춰왔듯, 창조 역시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화면 위로 흩어지는 빛의 씨앗은 그렇게 미래로 향한다. 가우디 재단이 그의 미실현 프로젝트로 소개하는 ‘호텔 어트랙션Hotel Attraction’도 연구와 3D 재구성을 거쳐 전시장 안에서 다시 모습을 얻는다.

이제 5층에서 시작해 여러 층을 오르내린 신사하우스도 다르게 보인다. 건물 구조에 맞춰 설계된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한 층에서 다음 층으로 이동하는 과정도 이야기의 흐름과 맞물린다. 완성된 건축물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한 건축가의 생각이 시작되고 변하는 시간을 실제 공간을 걸으며 따라가게 한다. 그렇게 전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나온 과정은 가우디 재단이 말하는 ‘원점으로의 회귀’와도 맞닿는다. 과거로 돌아가기보다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기 위해 창조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다시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그 질문을 안고 신사하우스를 나서면 글의 처음에 떠올렸던 바르셀로나도 다시 가까워진다. 서울에서 만난 가우디의 공간은 그렇게 다시 바르셀로나로 시선을 이끈다. 언젠가 구엘 공원의 언덕을 걷고, 카사 바트요의 창을 지나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기둥 아래에 서게 된다면 그 공간을 대하는 시각도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을지 모른다. 가우디는 자연을 닮은 건축을 만들기보다 자연이 공간을 만드는 방법을 건축으로 옮기려 했을까. 어쩌면 그때 달라져 있는 것은 가우디의 건축을 보는 방식만은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신사하우스
Sinsa House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62길 27
관람: 월요일(Mon) - 일요일(Sun), 10:00 – 20:00
(추석 당일 휴관)
문의: 02. 2014. 6900
예매: 피버(Fever)


Words by Grace
Still. Courtesy of Gaudí Foundation and Gaudí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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