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편집: 2024년04월26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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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넘어서, '야요이 구사마: 무한 거울의 방'

점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넘어서, '야요이 구사마: 무한 거울의 방'

올해 초 막을 내리기로 했던 테이트 모던의 <야요이 구사마: 무한 거울의 방> 전시가 9월까지 연장되었다. 작년 런던에서 열린 모든 전시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모으며 연일 매진되었기에 이 소식이 그리 놀랍지는 않다. 거대한 점박이 호박 작품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구사마 야요이(草間爾生·Kusama Yayoi)는 ‘Oblitarian Room’(소멸하는 방)과 같은 관객 참여형 전시, 다양한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온 현대미술가이다. 그러므로 미술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어딘가에서 한 번쯤 그의 점(點)을 마주했을 터이다. 그는 살아있는 현대미술가 중 가장 대중성을 지닌 작가라고 하겠다.

Yayoi KusamaPumpkin’, 1994 / Courtesy of Yayoi Kusama & Seoul Museum SeokPaJeong

“나는 매일 고통, 불안, 두려움과 싸워야 했고 내 병을 치료할
유일한 길은 미술 창작이었다. 난 미술의 끝자락을 따라갔고 어떻게든
내가 살아갈 길을 발견했다.”

-구사마 야요이

어린 시절부터 정신 질환을 겪은 구사마에게 창작은 곧 해방이었다. 끝없이 증식하는 점들로 이루어진 환상 세계는 그녀만의 도피처였다. 점이 면을 채우고, 면이 벽을 채우고, 벽이 공간을 채우고, 공간은 화려한 빛으로 뒤덮인다. 그리고 그 빛의 공간에 초대된 사람들은 작가가 겪은 고통, 불안, 두려움에 동화된다. 크고 작은 점들은 별이 되어 작가가 지녀온 다채로운 감정들로 반짝인다. 사실 지구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 중 단 하나의 점일 뿐이다. 우주를 떠도는 헤아릴 수 없는 별처럼 우리는 구사마의 세상에서 점이 되어 무한으로 나아간다.

야요이 구사마Yayoi Kusama. <Infinity Mirrored Room>(2023), Tate Modern, Courtesy of Yayoi Kusama & Ota Fine Arts and Victoria Miro, Photo © Tate(Joe Humphrys)

“나의 인생은 각기 다른 점 수천 개 속에서 길을 잃은 한 점이었다.”

-구사마 야요이

야요이 구사마Yayoi Kusama. Untitled’, 1939 / Courtesy of Yayoi Kusama & Tate Modern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 세계는 그림에서 시작해 조각, 설치 미술, 퍼포먼스로 발전해 왔다. 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점을 주제로 한다는 데 있다. 점을 향한 작가의 집요함은 열살 때 그린 드로잉에서부터 발견된다. 구사마는 올해 아흔넷이다. 그는 어느덧 현존하는 여성 미술가 중 가장 높은 판매가를 기록하는 작가가 되었다. 1950년대 후반 뉴욕으로 이주해 활동을 시작한 이래 그가 백인 남성이 주를 이룬 현대미술계에서 아시아 여성으로서 이룬 성과는 정말 놀랍다. 오늘날 그는 데미안 허스트를 포함해 여러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는 작가로서 팝아트, 미니멀 아트, 퍼포먼스 아트 같은 굵직한 미술 사조를 이끈 주역이 되었다.

구사마가 특별한 이유는 그가 ‘경계를 허무는 작가’여서이다. 그는 루이뷔통, 랑콤, 아우디와 협업하며 순수 미술과 디자인을 잇는 가교 노릇을 했다. 최근 루이뷔통과의 콜라보레이션에서 물감으로 그린 듯한 점을 시즌 패턴으로 내놓았다. ‘도트 라인’ 출시와 함께 런던 해롯 백화점 앞에는 붓을 들고 선 거대한 구사마 조형물이 설치되어 많은 이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Louis Vuitton x Yayoi Kusama: Infinite Possibility’, 2023 / Courtesy of Yayoi Kusama & Harrods

그의 작품이 언제나 호평을 받는 것은 아니다.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야요이 구사마: 무한 거울의 방> 전시는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뜨거운 티케팅 열풍을 불러일으켰지만, 막상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은 그저 사진 찍기 좋은 공간이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실제로 테이트 모던(영국), 야요이 구사마 미술관(일본), M+ 미술관(홍콩)에서 관람객이 구사마의 작품을 보는 데 들인 시간은 20초 ~ 1분이었다. 이는 사진을 위한 공간처럼 조성된 몇몇 국내 전시를 향한 비판과도 닮았다. 서울 대림미술관과 디 뮤지엄은 관람객 참여를 이끌어내는 재미있는 전시를 많이 열었지만, 때로는 깊은 감상보다 짧은 기록이 목적인 듯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야요이 구사마: 무한 거울의 방’, 대림미술관과 디 뮤지엄이 추구하는 참여적 요소에 우리가 여전히 눈길을 보내는 것은 요즘 미술관들이 관람객과 협업을 꾀하는 경향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1960년대 ‘참여 미술’ 정신에 그 뿌리를 둔다. 과거에 미술관 혹은 아티스트는 ‘특별한 지식’을 가진 자로서 관람객과 뚜렷한 상하 관계였다. ‘지식을 가진 사람이 곧 권력을 가진다’고 주장한 철학자 미셸 푸코의 생각과 같았다. 그래서 관람객은 미술관 큐레이터가 제공하는 ‘보존된 지식’을 습득하러 온 학습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하나의 작품을 향한 다양한 견해가 점차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최근 미술관은 관람객과 호혜 관계reciprocal relationship를 만들고자 한다. 이는 여러 관점을 수용하며 집단의 조화를 촉진하는 민주적 특징을 지닌다. 참여 미술의 이러한 요소들을 전시에 포함한 구사마의 작품은 더없이 소중하다.

Yayoi Kusama. ‘Oblitarian Room’, 2022 / Courtesy of Yayoi Kusama & Tate Modern

테이트 모던의 터 바인 홀에 있는 ‘Oblitarian Room’(소멸하는 방)에서 구사마가 이끌어내고자 한 참여적 요소가 가장 잘 드러난다. 2002년부터 시작된 ‘Oblitarian Room’ 시리즈에서 관람객은 백색 공간에 초대된다. 어린 시절 자기 그림을 모조리 없애는 엄마를 보면서 시간에 쫓겨가며 점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구사마. 그의 ‘방’에 들어선 관람객들은 구사마가 된 듯이, 혹은 구사마와 이야기하듯이 직접 도트 스티커를 붙인다. 관람객이 더 많이 방문할수록 점이 더 많이 생긴다. 관람객들은 색 스티커로 우크라이나 국기를 만들고, 무지개 빛깔을 빚고, 특정 문구를 적는다. 여기에는 이 시대의 뜨거운 담론들이 담겨 있다. 분명 개인이 참여하지만, 작품 내에서 관람객들은 작은 사회의 일원이 된다. 방에 놓인 침대에 함께 눕고, 피아노를 둘이서 연주하며, 부녀가 오붓하게 식물을 감상한다. 이 모든 과정 끝에 하얀 방은 영원으로 소멸한다.

관람객은 미술관에서 구사마가 겪었던 불안, 고통, 걱정을 마주하다가 나의 불안, 고통, 걱정을 발견한다. 나아가 개인 차원의 미술 경험을 넘어서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며 ‘커뮤니티 미술’에도 참여한다. 커뮤니티 미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형 기관이 아닌 개인과 커뮤니티에 의한 문화 예술 활동이 존중받으며 떠오른 개념이다. 문화 예술은 이제 더 많은 사회 구성원들을 그 범주에 포함한다. 예를 들어, 사회의 소외 계층은 ‘커뮤니티 미술’에 참여함으로써 예술적 표현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며 자율권을 부여받기도 한다. 비록 구사마의 ‘Oblitarian Room’은 테이트라는 대형 기관에 설치되었지만,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표현할 공간을 내어주었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미술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랑시에르는 예술이 사람 사이 교류를 강화시킨다(2004, p.47)¹고 주장했다. 모래알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이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서만큼은 서로를 존중하며 뜨거운 담론을 서슴없이 논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경험이 있을까. 어쩌면 구사마 작품 전시가 연장 소식을 알린 이유도 단순히 점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넘어서 관람객들이 경험한 따뜻한 유대 때문일 터이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에게서 비롯되니까.


¹ Ranciere, J. (2004). The Emancipated Spectator. Verso; Reprint edition, p.47


Words by Rosie Suyeon Kang
Main Still. Courtesy of Yayoi Kusama & Ota Fine Arts and Victoria Miro, Photo © Tate (Joe Humphrys)
Still. Courtesy of Yayoi Kusama & Seoul Museum SeokPaJeong
Still. Courtesy of Yayoi Kusama & Tate Modern
Still. Courtesy of Yayoi Kusama & Harr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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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순이 아닌 주제별’ 큐레이션이 돋보이는 테이트 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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