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편집: 2024년05월16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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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보고 마주보다 | 홍영인, PKM 갤러리

올려보고 마주보다 | 홍영인, PKM 갤러리

전시장 한쪽에 놓인 악보로 눈이 간다. 다가서서 한 장 한 장 넘기자, 실을 부드럽게 이어 그린 선에 리듬이 실려 있다. 아른대는 선은 흐르는 선율 되어, 나직하게 말을 건네듯이 귓가를 맴돌고 포근하게 감싼다. 함께 살아가며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도 숨죽여야 하는 몇몇 사람들에게 가닿아 아픔을 달래고 빛나도록 이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써 내려가는 서사를 아우른다. 더불어 사는 삶이 지닌 뜻이나 가치가 희미해지지 않고 온전히 이어지기를 바라며 홍영인 작가가 담아낸 메시지는 갤러리 곳곳에서 드러난다.


2022. 1. 19 - 2. 26

We Where

PKM 갤러리 | PKM & PKM+


영국 브리스틀을 기반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홍영인 개인전 <We Where>가 PKM 갤러리에서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9> 이후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는 생명을 지닌 인간, 동물이 자연과 구성하는 공동체를 다양한 시각에서 다룬 대형 자수와 사운드 설치미술 8점을 소개한다. 그리고 2017년에 제작하여 영국에서 발표하였던 사진-악보photo-score 시리즈도 전시한다.

홍영인(b.1972)은 시위가 잦았던 서울 광화문 근처 학교에 다녔다. 26살에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살며 석박사를 마치고 세월이 흐르면서, 나고 자란 한국과는 거리감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작가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한국 사회’를 다시 보고 싶었다. 광화문을 오가며 알게된 과거사를 돌아보고, 보도 기사와 사진을 찾아 근대화 역사에 기록되지 않고 사라져간 목소리를 찾아냈다. 1980년대 도시를 배경으로 시위하던 사람들을 찍은 사진에서는 한데 뭉쳐 의사를 표시하거나 그들을 통제하며 공권력을 행사하는 상황을 선으로 그려 실루엣만 남겼다. 그렇게 종이에 모은 선을 다시 면직물에 수놓아서 악보를 만들고, 피아노로 연주하여 사라졌던 목소리를 대신 내었다. 갤러리 별관에 들어서는 관람자는 피아노곡을 들으며 이 모든 작업 과정을 작품과 연결 지어 둘러보게 된다. 특히, 천 위에 실로 그려진 악장 5개인 ‘Looking Down from the Sky’ 옆에는 QR코드가 있어 모바일로 스캔하면 퍼포먼스 영상이 재생된다.

인트로부터 전개 1, 2, 3을 거쳐 카덴차 악장에 다다르면 기교 있는 화음 곡이 연주될 듯하다. 홍영인 작품 Looking Down from the Sky, 2017

지워진 존재를 드러내려는 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목소리를 시각화하여 그들 각자가 살아온 삶을 예술 언어로 기록하고 함께 있었음을 밝혀 역사에 길이 빛나게 하였다. 홍영인은 화사한 색을 띤 펠트 조각을 이어 붙이고 가느다란 메탈 체인으로 엮은 ‘Colourful Land (An Homage to Robert Morris)’ 작품에 그 뜻을 고스란히 담았다(맨 위 사진). 로버트 모리스 작업을 오마주하기도 했지만, 제주도 영등굿에 사용되는 종이 소품 ‘기메’가 삶과 혼을 투영한 데서 영감 받아 펠트 조각을 하나하나 만들었다. 작가는 4-5년 전에 선보였던 사진-악보와 사운드 작업에 이어 삶을 재조명하는 스크린을 다채롭게 완성하였다. 그 새로운 결실은 과거사를 거쳐 지금에 이른 ‘더불어 사는 삶’이 다음 세대에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지 고민한 흔적을 내비친다.

홍영인Young In Hong. Woven and Echoed, 2021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푸릇한 잔디를 지나 본관으로 향한다. 1층에는 인간처럼 정교하게 소통하고 교감하는 동식물 공동체를 탐구하는 장이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별관에 있던 사진-악보 시리즈와 좀 더 관련이 깊은 2층부터 먼저 들르기로 한다. 삼청동 골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창 옆에 걸린 작품 ‘Woven and Echoed’는 좀 더 대상을 분명히 하고 있다. 1970-1980년대에 섬유 공장에서 일한 여성 미싱사들이 했던 말과 그들이 이름 대신 불렸던 숫자로 존재를 나타냈다. 실을 엮어 직물을 만들고 색실로 단어와 문장 일부를 짜 넣은 대형 태피스트리 작품이다. 작가는 사회가 격변하는 거대한 서사에 묻힌 그녀들 삶을 한 구절씩 이어 아름다운 시 한 편처럼 끝맺었고 이를 널리 알리려 한다.

다시 본관 1층. 대자연이 펼쳐진다. 전시장에 소리가 울리며 아프리카 삼림 어딘가에 서 있는 듯하다. 나무로 뒤덮인 초원을 지나는 할머니 코끼리와 그 뒤를 바짝 따르는 손녀 코끼리가 조금 전까지 신고 있던 모양새로 짚신 네 켤레가 놓여 있다. 코끼리는 사람이 손목을 구부리는 것처럼 앞다리를 움직이며 걷는데 이를 세밀하게 표현하려고 큰 앞발에 맞춘 짚신은 10cm 정도 아래에 매듭을 지었다. 이 짚신과 사운드 작품 ‘Thi and Anjan ’은 코끼리가 발바닥과 코를 땅에 바짝 대고서 울림(저주파)을 느껴 의사소통하며 질서 있는 집단생활을 해나가는 습성이 효과적으로 나타난다.

코끼리 언어가 들리시나요? 작품 Thi and Anjan (2021) 설치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홍영인 작가는 “스스로 느끼기에 현대 사회는 인간 중심이다. 이 시점에 예술가는 영감을 어디서 받아야 할까 많이 고민했었다. 그렇게 공동체가 포괄하는 대상이 동식물과 자연으로 늘어났다. 2018년부터 2년여 동안 집에서 가까운 체스터 동물원에 자주 가서 관찰하고 촬영하고 녹음하곤 했다. 특히 야생에서 30년 동안 동물을 연구한 케이틀린 오코넬이 쓴 코끼리 관련 책을 읽고, 공동체 생활하며 소통하는 이들이 인간에 매우 가깝다고 여기게 되었다. 서로 기대어 함께 하는 의미를 인간과 동물 관계에서도 찾고자 하였다”라고 밝혔다.

짚신은 동물원에서 공동체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난 할머니 코끼리 티Thi를 기리고 홀로 남은 손녀 코끼리 안잔Anjan을 위로하며 만들어졌다. 짚풀 공예 명인 이충경, 박연화와 협업해나가는 과정은 인간과 코끼리가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 집단 문화를 존중하고 계승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일렉트로닉 뮤지션 마일즈 오토와 색소폰 연주자 앤드류 닐 헤이스가 웅덩이에서 물이 튀거나 인디언 결혼식이 연상되도록 작업한 사운드트랙 역시 짚신을 에워싸며 공존을 이야기한다.

단테의 ‘지옥문’에서도 영감을 받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작품 ‘One gate between two world, 2021’ (사진 가운데) 왼쪽에는 꽃을 든 고릴라 이스마엘(다니엘 퀸 소설 주인공) 작품 ‘Ishmael: Even the Gorilla Needs a Flower, 2021’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본관 출입구를 마주보는 전시장 벽면에 사당 안 고릴라와 원숭이를 묘사한 대형 자수 작품 ‘One gate between two world’이 걸려 있다.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시는 사당을 그린 민화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에서 착안하였다. 이 민화는 유교 제례의식에서 영적 세계와 실제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며, 조상을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함을 표현한다. 사대부 집안은 사당을 지었고, 민간은 이 그림으로 대신하였다. 작가는 조상 대신 동물원에서 직접 관찰한 고릴라와 원숭이를 자수로 수놓아,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지 않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길 바라는 듯하다. 자수 작품과 그 앞에 나무로 지은 사당 사이에 계층이 존재하지만, 대상을 존중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응시하며 설명하던 홍영인 작가는 사당에 앉아 있는 고릴라를 옮겨 그림 한쪽에 채웠다. 제사를 지낼 때 지방을 붙였다가 떼는 것처럼. 사진 왼쪽에는 아름다운 폭포에 별빛이 비치어 동물원과 다른 신성한 분위기가 엿보인다.

이번 전시는 인간과 동식물, 자연 등 여러 형태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밑바탕에는 과거와 현재, 다수와 소수, 남성과 여성, 물질과 정신, 보존과 도태, 옳고 옳지 못함 등 대비되는 요소들이 수많은 경계선을 긋고 있다. 홍영인 작가는 공동체 안에 남아 있는 선을 흔적없이 지워가며 끝없이 소통하여 나아갈 방향을, 예술이라는 유연한 방식으로 하나하나 엮은 전시에 우리를 초대한다.

영국 브리스틀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홍영인은 서울대학교에서 조소로 학·석사를, 골드스미스 런던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 ICA, 주영 한국문화원, 아트선재센터, 아트클럽 1563, 대안공간 루프를 포함, 유럽과 아시아에서 다수 개인전과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런던 블록 유니버스, 브리스틀 아르놀피니 미술관, 마게이트 터너 현대 미술관 등 세계 유수한 공간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 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단체전에 참여하였고, 광주비엔날레, 밀라노 트리엔날레 같은 국제 행사에 다수 출품하였다. 2019년에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원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김세중 조각상 (2011), 석남미술상 (2003)을 수상하였다. 현재 영국 바스 미술 대학에서 퍼포먼스 & 텍스타일 전임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PKM 갤러리
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40 /Tel. +82 2 734 9467
Hours Tuesday–Saturday, 10 AM–6 PM

2001년에 문을 연 PKM 갤러리는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단색화 거장 윤형근과 구정아, 이불, 코디최 등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전시를 개최해왔다. 또한 해외 저명한 작가인 존 발데사리, 올라퍼 엘리아슨, 댄 플래빈 등을 국내에 적극 소개하였다. 젊은 작가들 작품전도 기획하여 이들이 차세대 미술 주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있다. PKM 갤러리는 2004년 한국 화랑 최초로 프리즈 아트 페어에 초청되어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 미술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아트 바젤, 피악, 아모리 쇼, 엑스포 시카고 등 명망 있는 국제 아트 페어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PKM 갤러리는 창립 14주년을 맞이한 2015년 4월, 삼청동 지역으로 이전하여 재개관하였다. 현재 최대 5.5m 높이 천장고를 갖춘 본관 전시장과 부티크한 별관 전시장을 보유한 대규모 화랑이다.


Words & photographs by Koeun Lee
Still. Courtesy of artist and PKM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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