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편집: 2024년04월26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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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도 역사이자 문화인 도시 | 런던 02

대중교통도 역사이자 문화인 도시 | 런던 02

두 번째 이야기 - “환승합니다! 런던 버스와 택시로.”


런던에서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색깔은 단연 빨강이다. 런던을 방문한 사람에게 버킹엄 궁 왕실 근위병 제복과 공중전화 부스와 2층버스의 빨강은 거역할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이다.

코드명 팬톤 485C. 런던 2층버스의 그 강렬한 빨간색은 어디서 말미암았을까. 무려 700개나 되는 노선이 어째서 죄다 빨강 일색일까. 한때는 런던 버스도 한국에서처럼 노선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그러다가 여러 회사가 한 회사로 통합되면서 그 한 회사가 쓰던 빨간 색으로 통일되었다. ‘그 회사’는 왜 빨간 색을 썼을까. 아마도… 안개와 비와 구름이 늘쌍인 런던에서 태양이 그리워서 그랬거나, 도시를 가득 채운 공원의 짙은 녹음이나 오래된 석조 건물들과 가장 잘 어울려서 빨강을 택했으리라.

20세기 디자인을 되살린 루스마스터 2층버스(왼쪽)와 새 디자인 버스(오른쪽) / photo by Doyu Min Seo

20세기 디자인을 되살린 루스마스터 2층버스(왼쪽)와 새 디자인 버스(오른쪽) / photo by Doyu Min Seo

 런던에서 버스는 지하철이나 택시보다 대중에게 더 친숙하다. 런더너들의 버스 사랑에 얽힌 예화 한 가지. 1892년 패딩턴 시에서 마차로 시작했던 대중교통이 2층버스의 시초이다. 오늘날 운행되는 루스마스터 2층버스는 1950년대부터 운행되다가 1990년대에 사라졌던 디자인이다. 그런데 런던 시민들이 현대 감각이 물씬 풍기는 새 디자인보다 구닥다리 느낌의 예전 디자인으로 돌아가자고 요청함으로써 되살아났다. 2014년 일이다. 루스마스터는 한국의 속초 켄싱턴 호텔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전시용ㆍ소장용으로 팔릴 만큼 초창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버스 디자인의 전형典型이다.

Regent street / photo by Koeun Lee

Regent street / photo by Koeun Lee

버스가 지하철이나 택시보다 이용객이 많은 까닭은 운영 방식에 있다. 8천대나 되는 버스가 7백개 노선을 따라 시가와 골목골목을 누비므로 버스만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가령 런던에서 역사의 체취가 가장 많이 서린 곳을 구경하고 싶다면 15H 노선을 탑승하면 된다. 15노선을 단축한 15H는 문화유산 노선Heritage route이다. 운행 거리가 멀지 않은 데다 갈 때는 오른쪽에 앉고 올 때는 왼쪽에 앉아 런던의 고색 창연한 문화유산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렇듯 세분화하고 이용객을 배려한 노선 덕분에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거나 지하철에서 버스로 환승할 일이 없다. “이번 역(정거장)에서 ○○으로 갈아타십시오”라는 안내를 들을 수 없는 곳이 런던이다. 게다가 튜브(굴) 속을 달리는 튜브(지하철)와 달리 편안히 앉아서 바깥 풍경을 구경하는 것은 물론 요금도 훨씬 싸다. 버스의 장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연인원 18억 명을 태우는 런던 버스는 1913년부터 24시간 운영 체제를 지켜오고 있다. 지하철도 24시간 운영되지만 주말뿐이므로 버스와 경쟁이 안 된다.

런던 버스는 모두가 2층 버스일까. 아니다. 가끔 단층 버스가 보인다. 그러나 이는 남쪽과 북쪽의 터널을 통과하는 버스에 국한한다. 2011년 이전에는 두 버스를 이은 것처럼 길다란 밴 디버스도 있었다. 휠체어와 유모차를 쓰는 사람에게 인기가 있었으나 일반 버스에 비해 두 배 가까운 사고와 화재가 발생하는 데다 무임승차자가 늘어나자 사라졌다.

1편에 사진이 실린 특별한 Underground 입구가 있는 Bank Station 앞 블랙 캡. / photo by Koeun Lee

1편에 사진이 실린 특별한 Underground 입구가 있는 Bank Station 앞 블랙 캡. / photo by Koeun Lee

블랙 캡Black Cab이라고 불리는 런던 택시의 검은색도 2층버스의 빨간색처럼 런던의 대중교통에서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블랙 캡 또한 2층버스처럼 색깔의 유래에 귀가 솔깃해지는 스토리텔링이 없다. 런던 택시는 애초에 자동차 회사에서 다양한 색상으로 생산되었으나 1948년부터 검은색만이 표준 색상으로 생산되면서 검정 일색이 되었다. 현재 런던 택시의 시초 모델인 오스틴 FX3 클래식 택시였다. 다른 색깔을 덧칠하는 데 돈이 들자 택시 회사들이 검은색을 그대로 쓰게 되었다는 사연이다. 런던 거리에서 다른 색 택시를 종종 볼 수 있지만, 어느덧 검정은 전통을 만들고 지키는 데 남다른 영국에서 대중교통의 아이덴티티로 대세를 굳혔다. 단순한 이유에서 비롯되었지만, 런던의 대중교통 수단이 지닌 고유의 색상들은 다른 듯하면서 묘하게 얽혀 있다. 지하철의 사인에 담긴 빨강ㆍ검정ㆍ하양, 버스의 빨강, 택시의 검정은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퍼즐처럼 잘 맞아떨어진다.

런던 택시의 시초는 17세기 해크니 게이지 마차이다. 1654년 올리버 크롬웰이 의회에서 택시운전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정식 면허를 가진 택시 산업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중교통으로 자리잡게 하였다. 이후 1897년 허밍버드 택시가 생기기 전까지 63년간 런던 시민을 태우고 달린 택시는 1834년 조셉 핸슨이 승객의 안전성과 속도를 높여 설계한 2륜 마차였다. 내연기관 택시 중에 가장 장수한 것은 오스틴 FX4 모델이다. 무려 39년간 디자인이 변하지 않았다. 현재의 TX4 모델은 제임스 본드와 셜록 홈스 등 5천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최다 기록을 세웠다.

Covent Garden / photo by Doyu Min Seo

Covent Garden / photo by Doyu Min Seo

마차에서 내연기관으로, FX3에서 TX4로 택시가 변해오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수준이 높은 택시 기사의 자질과 전문 지식이다. 런던의 택시 요금이 비싼 것은 면허를 따기가 매우 어려운 그들의 수준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런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토바이 라이더는 골목골목을 누비며 택시 운전사가 되려고 첫 번째 단계를 익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복잡한 런던의 시가와 골목들을 손금 보듯이 익혀 내비게이션 없이 지름길과 막힐 때 돌아가는 길을 훤히 꿰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King’s Cross station, st. Pancras International 앞에 줄지어 선 블랙 캡 / photo by Koeun Lee

King’s Cross station, st. Pancras International 앞에 줄지어 선 블랙 캡 / photo by Koeun Lee

그 과정을 넘기면 더 막중한 책무가 주어진다. 런던은 세계 제일의 관광 도시이다. 택시 기사들은 전세계에서 몰려오는 연간 수천만에 이르는 외국인을 공항에서 맞아 시내 곳곳을 달리는 동안 손님에게 최고 수준의 역사와 관광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또 승객들에게서 정치, 경제, 패션, 개인사에 이르기까지 영국이 필요로 하는 온갖 정보를 얻는 ‘도로 위의 정보 상자’이다.

런던에 거주하는 사람의 40%가 외국인이다. 그들 대다수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 안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이국의 언어와 문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어우러져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가는 런던의 대중교통이야말로 셰익스피어의 <즐거운 아낙네들>에 나오는 ‘세상은 너의 것이다 The world is your oyster’라는 문구와 정말 잘 어울리지 않는가!



photographs by Koeun Lee
Words & Additional photographs by Doyu Min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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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amp; 아트 토크 | JD Malat Gallery,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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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도 역사이자 문화인 도시 | 런던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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